카니도라쿠 도톤보리본점, 가격 대비 가치가 있는 곳일까 [오사카 맛집 기행 1편]

1. 식당 개요 및 위치

도톤보리를 걷다 보면 시선이 자동으로 꽂히는 간판이 있다. 바로 6미터짜리 움직이는 게. 겁나 비싼 식당같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가격대가 괜찮다. 가격이라는 것이 비록 상대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간판이 달린 식당이 바로 지금 소개할 카니도라쿠 도톤보리본점[구글맵 링크]이다. 이 집은 1960년에 문을 열었다. 일본에서 게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요리”로 만든 거의 최초의 가게로, 게 요리의 대중화를 이끈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체인이 생겼지만, 이곳이 본가다. 정통 중의 정통.

이런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니, 이 알짜배기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가 이해된다. 그 유명한 에비스 다리를 사이에 두고, 더 유명한 글리코사인과의 대칭점에 위치해 있다. 지나가다가 보지 않을 수 없는 극강의 입지다.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어 그 존재감은 더욱 압도적이다.

Iconic giant moving crab sign of Kani Doraku main branch in Dotonbori, Osaka. 오사카 도톤보리 카니도라쿠 본점의 상징인 거대한 움직이는 게 간판
The iconic moving crab sign of Kani Doraku in Dotonbori, Osaka | 오사카 도톤보리 카니도라쿠의 상징적인 움직이는 게 간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오사카 여행 중 첫날 첫 끼니로 방문했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나오니 13시가 조금 넘었고,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14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늦은 점심 시간인 데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웨이팅이 전혀 없었다.

입구에서 2명이라고 말하니 1층 안내데스크로 안내해 주었고, 안내데스크의 직원이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면서 3층으로 가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는 2~3대 정도 있었다. 안내데스크 앞쪽에는 커다란 수조에 싱싱한 활대게들이 층층이 쌓여 있어 식욕을 자극했다.

Fresh live crabs stacked in large water tanks at the entrance of Kani Doraku in Dotonbori, Osaka. 오사카 도톤보리 카니도라쿠 입구에 층층이 쌓인 신선한 활대게 수조
Live crabs in water tanks at the entrance of Kani Doraku, Dotonbori | 도톤보리 카니도라쿠 입구의 활대게 수조

건물 자체가 카니도라쿠 건물이다 보니 공간이 널찍했다. 창가 쪽으로 다다미석이라 할 수 있는, 발을 아래로 넣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는데, 상당히 여유로워서 도톤보리를 오가는 관광객들을 구경하기 좋은 창가 자리로 안내받았다. 메인 자리는 코너석인 것 같은데, 그쪽은 예약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직원은 없었으나,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메뉴판은 전부 일본어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테이블오더 기계는 한글 선택이 가능했고 주문 또한 테이블오더로 진행했다.

Inside view of Kani Doraku’s upper floor with traditional seating and a panoramic view of Dotonbori and Ebisu Bridge. 도톤보리와 에비스 다리를 내려다보는 카니도라쿠 상층부의 전통 좌석 공간
Traditional seating and Dotonbori street view from the upper floor of Kani Doraku | 카니도라쿠 상층부 전통 좌석과 도톤보리 전망

위치는 아래의 구글 지도 참고.

2. 메뉴 구성

너튜브 영상을 여러 개 보고 공부해 갔는데, 방문 시간이 14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런치 메뉴가 제공되고 있었다. 총 네 가지 런치 메뉴는 다음과 같다.

  1. 아이: 3,520엔
  2. 아카네: 3,960엔
  3. 미즈키: 4,950엔
  4. 츠구미: 5,940엔

물론 가격대가 올라갈수록 요리 종류에 개수에 차이가 있었다. 각 코스는 간단한 전채부터 시작해 다양한 조리법으로 맛볼 수 있는 게 요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Lunch course menu options displayed on a tablet at Kani Doraku in Dotonbori, Osaka. 오사카 도톤보리 카니도라쿠 태블릿에 표시된 런치 코스 메뉴 선택 화면
Lunch menu displayed on tablet ordering system at Kani Doraku, Dotonbori | 도톤보리 카니도라쿠 테이블오더 태블릿의 런치 메뉴

두 명이 서로 다른 코스 요리를 한 개씩 시킬 수 있을지 잠깐 고민했지만, 일단 주문해 보고 안 된다고 하면 통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다양한 게 요리를 맛보기 위해 미즈키와 츠구미 코스를 각각 선택했다.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구성이 다르다. 게 슈마이와 게 크로켓은 아카네에만 있고, 게 전골은 츠구미에만 있고 등등. 게 솥밥이 가장 궁금한 메뉴였기에, 만약 츠구미에 게 솥밥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2인 모두 츠구미로 주문했을 수도 있다.

런치 세트는 디너 세트와 크게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애매한 시간대임을 감안하여 저렴하게 판매하는 듯하다.

3. 음식별 상세 리뷰

우리가 실제로 먹은 메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게 전채: 2인분
  • 게 회: 2인분
  • 일본식 계란찜: 2인분
  • 게 그라탱 크랩 소스: 2인분
  • 게 튀김: 2인분
  • 게 전골: 1인분
  • 게 구이: 1인분
  • 게 솥밥: 1인분
  • 채소 절임: 1인분
  • 게 초밥: 1인분
  • 국물 요리: 1인분
  • 말차를 끼얹은 아이스크림: 2인분

미즈키와 츠구미 코스에 중복되는 메뉴는 2인분, 중복되지 않는 메뉴는 1인분씩 나와서 나누어 먹었다.

첫 번째, 게 전채 요리

Crab legs and salad on lacquer tray 게다리와 샐러드가 담긴 전통 쟁반 위 요리
Crab legs with salad | 게다리와 샐러드 전채
Close-up of crab roll and salad 게살 롤과 샐러드 클로즈업
Crab roll and greens | 게살 롤과 채소
Top view of full appetizer set 전채 구성 전체를 위에서 본 모습
Appetizer set overview | 전채 구성 전체 샷
Dipping crab leg into sauce 게다리를 소스에 찍는 장면
Dipping moment | 소스에 찍는 순간

구성:

  • 찐 게 다리와 찍어 먹는 소스
  • 고구마, 방울토마토, 초록잎 야채, 그리고 게살과 갖가지 채썬 야채가 들어간 롤과 찍어 먹는 소스

찐 대게 다리는 껍질이 선명한 붉은 빛을 띠며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 한 입 베어 물자 육즙이 입 안에 퍼지며 익숙한 대게 맛이 느껴졌다. 수율이 좋아 알차게 살이 차 있었고, 익힘 정도도 적절해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남아있었다. 바다 향은 은은하게 감돌았지만 비린내는 전혀 없어 게 본연의 단맛이 돋보였다.

찍어먹는 소스는 새콤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강한 풍미로, 나는 괜찮았지만 여자친구는 좀 부담스러워했다.

게살이 들어간 롤은 예상보다 강한 게 향이 특징이었다. 마치 게살을 그대로 눌러 담은 듯 농축된 향이 코를 먼저 찔렀다. 찍어먹는 소스 역시 게 향이 진하게 배어 있어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이 소스는 우리 둘 다 맛있게 먹었다.

두 번째, 게 회

Close-up of raw snow crab sashimi 대게 다리 회 클로즈업
Shiny crab flesh | 반짝이는 대게살
Crab sashimi with wasabi and garnish 와사비와 곁들인 대게 회
Crab with wasabi | 와사비와 함께한 대게 회
Picking up crab sashimi with chopsticks 게회 젓가락으로 집는 장면
Lifting crab sashimi | 게회를 집는 순간

대게 다리 회가 시소와 무채, 해초와 오이, 생와사비, 스시간장과 함께 정갈한 그릇에 담겨 나왔다. 반투명한 게살은 마치 진주처럼 빛나는 미세한 결을 보여주었다. 맛은 무난했지만 섬세했다. 비린 맛이 있다는 후기가 있었지만, 우리가 받은 회는 신선도가 높아 깨끗한 바다 향만 감돌았다.

게장이나 날새우를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는 못 드셨을 듯하고, 날새우와 비린 향이 전혀 없는 완벽하게 신선한 게장만 먹는 여동생은 아마도 비려했을 듯하다.

맛은 간장게장에서 간장을 뺀 것과 비슷했다. 대게라고 해서 다른 게와 살의 맛이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씹을수록 퍼지는 게살 특유의 달달함과 은은한 바다 향이 여운으로 남았다. 스시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니 감칠맛이 더해져 풍미가 한층 깊어졌다.

세 번째, 일본식 계란찜

Lidded ceramic bowl with spoon 뚜껑이 덮인 도기 그릇과 붉은 숟가락
Chawanmushi in ceramic bowl | 도기에 담긴 차완무시
Opening ceramic lid to reveal steamed egg custard 뚜껑을 열어 계란찜을 보여주는 장면
Lifting the lid | 뚜껑을 여는 순간
Steamed crab egg custard with broth and garnish 게살과 국물이 얹어진 계란찜
Steamed egg with crab | 게살 얹은 계란찜

유약이 반들반들 빛나는 예쁜 도기 그릇에 담겨 나왔다. 뚜껑을 들어 올리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차완무시 위에 걸쭉한 국물에 박혀있는 게살 결이 선명하게 보였다. 숟가락으로 살짝 떠보니 계란찜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 속에 게살이 숨어 있어 씹을 때마다 색다른 식감을 선사했다.

맛은 고소하면서도 게의 단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바닥에는 은행, 밤, 표고버섯 등이 숨어 있어 매 숟가락마다 새로운 발견의 즐거움을 주었다. 은행은 단단하면서도 고소했고, 밤은 자연의 단맛을, 표고버섯은 깊은 풍미를 더해주었다.

이 즈음 게 솥밥이 나왔는데, 직원이 직접 세팅을 다 해주었다. 간이 된 물을 솥에 직접 붓고, 솥을 끓일 고체연료에 불을 붙여주었다. 30분 기다리라고 안내해주었다.

네 번째, 게 구이

Grilled crab legs with shell charred and glossy 불향이 배인 윤기 나는 게 구이
Grilled crab leg | 구운 대게 다리
Close-up of grilled crab claw with lemon 게 집게발과 레몬이 담긴 접시 클로즈업
Crab claw and lemon | 집게발과 레몬
Top view of grilled crab legs served on ceramic plate 구운 게 다리와 레몬이 담긴 전통 접시
Grilled crab plate | 대게 구이 상차림

츠구미 코스에 포함된 메뉴라 1인분만 나왔다. 얇은 다리 하나와 집게발이 반으로 갈라져 있다. 껍질은 그을려 윤기가 도는 붉은 빛을 띠었고, 그 향이 식욕을 자극했다.

식감은 살짝 뻣뻣했는데, 굽는 조리 방식 때문에 수분이 많이 날아간 듯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맛이 농축되어 향이 더욱 진하고 감칠맛이 배가되었다. 전체적으로 맛은 괜찮았으나, 수분감이 살아있는 찐 게가 더 부드럽고 촉촉해 개인적으로는 더 맛있게 느껴졌다.

다섯 번째, 게 그라탱 크랩 소스

Lidded crab-patterned ceramic dish 게 무늬가 그려진 뚜껑 달린 도자기 그릇
Crab-patterned bowl | 게 그림이 그려진 그릇
Melted cheese-topped crab gratin 치즈가 노릇하게 구워진 게살 그라탱
Baked crab gratin | 구워낸 게살 그라탱
Opening the lid of a hot crab gratin 뜨거운 게 그라탱의 뚜껑을 여는 순간
Revealing the gratin | 뚜껑을 여는 순간
Scooping up hot crab gratin with cheese 치즈가 녹아내리는 게살 그라탱을 퍼내는 장면
Spoonful of flavor | 한 숟갈의 풍미

손바닥보다 작은 그라탱 그릇이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로 서빙되었다. 고온의 오븐에서 막 꺼낸 듯했다. 뚜껑을 열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치즈 표면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진한 치즈 향이 코를 감쌌다.

맛은 전형적인 서양식 그라탱에 게의 풍미가 더해진 독특한 조합이었다. 게 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중간중간 탱글탱글한 식감의 게살 덩어리가 씹힐 때마다 바다의 감칠맛이 퍼져나갔다.

즈는 적당히 짭짤해 풍미를 더했고, 특히 가장자리에 그을려 마이야르 반응이 강하게 일어난 부분은 깊고 풍부한 맛이 농축되어 침샘이 폭발했다. 만족감을 주는 한 그릇이었다.

여섯 번째, 게 전골(소)

Crab hotpot ingredients and broth set 전골 국물과 재료 세트 구성
Hotpot setup | 전골 세팅
Close-up of crab hotpot ingredients with carrot cut in crab shape 게 모양 당근이 돋보이는 전골 재료 클로즈업
Crab-cut carrot | 게 모양 당근
Cooked crab hotpot with tofu, mushrooms and crab legs 게살과 두부, 버섯이 익은 전골
Hotpot ready | 전골 완성
Lifting cooked crab leg from hotpot with chopsticks 전골에서 익은 게다리를 건지는 장면
Crab moment | 게살 건지는 순간

일본식 샤브샤브 느낌의 전골이 츠구미 코스에 포함된 메뉴라 1인분만 나왔다. 두툼한 종이 받침 위에 놓인 냄비에는 투명한 쯔유 베이스 국물이 담겨 있었고, 그 아래에는 고체연료에 불이 붙어 있었다.

냄비가 끓기를 기다렸는데, 직원이 왜 안 넣냐고 말하는 것 같아 재료를 넣었다. 부글부글 끓여먹는 요리가 아니라 은근히 데워서 먹는 요리인 듯했다. 처음부터 재료를 넣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게 모양으로 정교하게 잘린 당근이었다. 예쁜 당근 조각과 함께 곤약면, 배추, 두부, 게 다리와 집게발, 팽이버섯, 표고버섯, 무순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두부가 상당히 탱글탱글해 놀라웠다. 우리나라 부침용 두부 정도의 탄력이 있었지만, 쉽게 부서지지는 않았다. 버섯과 배추도, 충분히 익히니 국물을 머금어 간이 잘 베어 감칠맛이 살아났다. 국물은 담백하면서도 깊다.

일곱 번째, 게 튀김

Assorted tempura with crab leg, pepper, and yam 게 다리, 꽈리고추, 마 튀김이 담긴 접시
Crab tempura set | 게 튀김 세트
Whole crab leg tempura with vegetables on plate 게다리와 채소 튀김이 함께 담긴 한 접시
Tempura plate | 튀김 한 접시

바삭한 튀김옷에 싸인 게 다리 하나와 꽈리고추처럼 생긴 것,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한 접시에 담겨 나왔다. 껍질에서는 기름 냄새 대신 고소한 향이 났고, 바삭한 소리와 함께 튀김옷이 깨지며 속의 부드러운 살이 드러났다.

작은 종지에 담긴 곱게 간 무는 튀김 소스에 찍어먹는 용도였다. 게 다리살은 촉촉하고 탱글탱글해 튀김옷과의 식감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꽈리고추는 씹으면 쌉싸름한 향이 퍼졌는데, 튀김옷의 바삭함과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는 무 아니면 마 같았는데, 한 입 베어 물자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퍼졌다. 생것이 아니라 익힌 것을 튀겨낸 느낌이었다. 일본에 사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야마이모(山芋)나 나가이모(長芋) 같은 일본산 마가 아닐까 한다고 했다. 고소한 맛에 살짝 끈적한 식감이 특징이었다.

게와 마는 맛있고, 꽈리고추는 쏘쏘.

여덟 번째, 게 솥밥

Crab rice cooking in a traditional iron pot 전통 솥에서 조리 중인 게 솥밥
Crab kamameshi on the stove | 게 솥밥 조리 중
Staff adding crab meat to the cooked rice pot 솥밥 위에 게살을 올리는 장면
Adding crab to kamameshi | 게살 올리는 순간
Opening the wooden lid of the crab rice pot 솥밥 뚜껑을 여는 순간
Lifting the lid | 뚜껑을 여는 순간
Crab rice served in small bowls on the table 게 솥밥이 공기에 담긴 모습
Crab rice bowls | 게 솥밥 완성
Close-up of crab rice served in small bowls 공기에 담긴 게 솥밥 클로즈업
Crab rice in bowls | 공기에 담긴 게 솥밥

고체 연료가 다 사용되고도 뜸들이는 시간까지 합쳐 약 30분이 걸렸다. 그래서 초반에 나왔지만 계속 옆에서 끓고 있었다. 솥에서 물이 살짝살짝 넘치는 모습과 구수한 향이 퍼져나오는 것을 보니 딱 봐도 맛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직원이 주의사항과 카마메시를 먹는 법을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준비는 모두 해주고, 뚜껑을 열어 게살과 밥을 섞어 그릇에 덜어 먹다가, 나중에는 오차즈케로 즐기라고 했다.

뜸까지 든 솥밥을 직원이 와서 열고 붉은 게살을 듬뿍 넣어준다. 그리고 잠시 동안 게살 향을 밥에 입혀준 뒤, 먹기 직전 우리가 직접 뚜껑을 열게 한다.

솥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윤기가 흐르는 쌀알 사이로 붉은 게살이 얼굴을 내밀었다. 물은 맹물이 아닌 간이 된 다시마와 가쓰오부시 베이스의 국물이었다. 처음 물을 부을 때부터 연한 갈색빛이었고, 다 된 밥도 같은 빛을 띠었다. 누룽지는 거의 없었지만, 밥알 하나하나가 국물 맛을 완벽하게 흡수하고 있었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자 쌀알의 탱글탱글한 식감과 함께 게살의 달콤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밥만 먹어도 간이 딱 좋아 계속 손이 갔다. 게살은 큰 덩어리로 섞여 있어 씹을 때마다 달콤한 육즙이 터져 나왔다.

Mitsuba and wasabi prepared for ochazuke 오차즈케용 미츠바와 와사비 준비된 모습
Mitsuba and wasabi for ochazuke | 오차즈케용 미츠바와 와사비
Crab rice topped with mitsuba and wasabi, ready for broth 미츠바와 와사비를 얹은 게솥밥에 국물을 붓기 직전
Crab rice ochazuke in the making | 게 솥밥 오차즈케 만들기

이제 오차즈케를 먹을 차례. 찻잔에 담긴 국물과, 오차즈케에 올릴 미츠바(三つ葉, Mitsuba), 그리고 생와사비가 준비되었다. 국물은 가쓰오부시 다시가 베이스인 듯 깊고 풍부한 감칠맛이 느껴졌다. 간이 은은하게 되어 있어 밥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미츠바는 한국의 미나리와 비슷하지만 더 청량하고 산뜻한 향이 특징이었다. 시소와 미나리 사이의 느낌으로, 밥 위에 올려 국물을 부으니 향긋한 풍미가 오차즈케에 생기를 더했다. 오차즈케도 괜찮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밥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아홉 번째, 채소 절임(오츠케모노, お漬物)

Three types of Japanese pickles served in a small dish 작은 접시에 담긴 세 가지 일본식 절임채소
Japanese pickles in three colors | 삼색 일본식 피클
Lotus stem pickle held by chopsticks 젓가락에 집힌 연자루 절임 하스노에
Lotus stem pickle “Hasunoe” | 하스노에 연자루 절임

미즈키 코스에 포함된 메뉴라 1인분만 나왔다. 직원이 일본식 피클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작은 그릇에 세 가지 절임 채소가 각각의 색깔로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초록색 줄기는 연꽃 줄기인 하스노에(蓮の柄)였다. 정확히는 연자루 절임으로, 단면을 보니 연근처럼 작은 구멍들이 촘촘히 나 있었다. 한입 베어물자 낫또처럼 하얀 실 같은 것이 쭉 늘어났다. 소금과 식초에 절여져 있어 적당히 간이 되어 있었고, 씹을수록 아삭한 식감이 입 안에서 경쾌한 소리를 냈다.

선명한 빨간색의 매실절임인 우메보시(梅干し)는 일본의 대표적인 짱아찌다. 한 입 넣자마자 신맛과 짠맛이 강렬하게 혀를 자극했다. 이 강한 맛은 확실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었다.

허연 색의 무 절임인 타쿠앙(たくあん) 혹은 시로즈케(白漬け)는 식초, 소금, 설탕으로 절인 듯한 맛이 났다. 은은한 단맛이 감돌았고, 씹을수록 아삭한 식감이 즐거웠다. 마치 우리나라 동치미 무와 비슷한 청량감이 있었다.

우메보시를 제외한 절임들은 맛있게 먹었고, 특히 하스노에의 독특한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열 번째, 게 초밥

Japanese crab sushi rolls with egg and cucumber 계란과 오이, 게살이 들어간 일본식 초밥 롤
Crab sushi rolls served in Tsugumi course | 츠구미 코스에 포함된 게 초밥 롤

비주얼은 마치 한국의 김밥 같았지만, 이름은 게 초밥이었다. 속을 들여다보니 게살이 듬뿍 들어있었고, 계란 지단과 오이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같이 나온 스시 간장에 살짝 찍어 한 입 베어 물자 밥의 촉촉함과 게살의 탱글거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간이 적절해 짜지도 싱겁지도 않았고, 게 향이 코끝을 스치듯 부드럽게 감돌았다. 밥알은 적당히 뭉쳐져 있으면서도 각각의 알이 살아있어 식감이 좋았다.

이것도 츠구미 코스에 포함된 구성이라 1인분만 나왔지만, 두 개로 나누어 하나씩 먹을 수 있었다. 간단하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한 끼의 마무리로 충분했다.

열한 번째, 국물 요리

Japanese miso soup with slices of crab body and tofu 게살과 두부가 들어간 일본식 미소된장국
Miso soup with floating crab slices and tofu | 게살과 두부가 들어간 미소된장국

일본식 미소된장국 같은 비주얼이었지만, 그릇을 들여다보니 얇게 썰린 게 몸통이 둥둥 떠 있었다. 두부도 들어 있었는데, 이 두부에서 게 향이 굉장히 진하게 났다. 

몸통 살은 얇게 저며져 있어 국물이 잘 배어 있었고, 발리기 쉬운 모양이었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맛보기에는 충분했다. 국물 자체는 게 향이 그리 강하지 않았는데, 이미 앞서 향이 강한 건더기를 먹고 난 뒤라 덜 느껴졌을 수도 있다.

열두 번째, 말차를 끼얹은 아이스크림

Top view of vanilla ice cream with matcha sauce in a white bowl 하얀 그릇에 담긴 말차 소스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
Vanilla ice cream with matcha sauce from the top | 위에서 본 말차 아이스크림의 모습
Matcha being poured over vanilla ice cream by a server 직원이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말차를 붓는 장면
Pouring matcha onto vanilla ice cream | 아이스크림 위에 말차 붓는 순간
Spoon stirring vanilla ice cream and matcha sauce together 스푼으로 말차 소스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섞는 모습
Mixing matcha and vanilla ice cream | 말차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섞기

디저트 선택 시 유자 셔벗과 말차 아이스크림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는데, 둘 다 맛볼까 하다가 유명 너튜버가 말차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보라고 해서 두 개 다 말차 아이스크림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솔직히 하나는 유자 셔벗으로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들었다.

직원이 그릇에 진한 녹차 분말을 담고 물을 부어 대나무 솔인 차센(茶筅, Chasen)으로 능숙하게 섞어주었다. 그리고 이 진한 말차를 하얀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부어주었다. 말차가 아이스크림 위로 천천히 흘러내리며 마치 흰색과 초록색 물감이 만나 섞이는 듯한 아름다운 마블링 효과를 만들어냈다.

맛은 쌉싸름한 말차와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말차는 상당히 진해서 첫 맛은 강렬했지만, 고급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움이 쓴맛을 중화시켜주었다. 맛은 분명 좋았지만, 극찬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역시 유자 셔벗도 함께 맛보는 게 더 다양한 경험이 되었을 것 같다.

4. 총평

츠구미 5,940엔 + 미즈키 4,950엔 해서 총 10,890엔(약 11만원 정도)이 나왔다. 배가 부를 수준의 양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게 요리를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식사였다.

총 12가지, 오차즈케까지 치면 13가지의 음식을 먹었다. 이것들을 맛있었던 것, 적당했던 것, 아쉬웠던 것으로 나누어 보면,

  1. 맛있었던 것 : 게 전채, 일본식 계란찜, 게 그라탱 크랩 소스, 게 솥밥, 채소 절임, 게 초밥, 말차를 끼얹은 아이스크림
  2. 적당했던 것 : 게 회, 게 튀김, 게 전골, 게 구이, 오차즈케
  3. 아쉬웠던 것 : 국물 요리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나누고 나니, 꽤 맛집이었잖아?

솔직한 심정으로 다시 방문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고, 한 번의 경험은 만족스러웠다. 신선하기도 했고. 가격대도 생각보다 엄청 비싼 집은 아니니, 가족 혹은 연인과의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한 번쯤은 가봄직한, 그런 식당인 듯하다.

게의 다양한 맛과 일본의 세심한 요리 기법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장소였다.

Looking out the window at Ebisubashi and the busy streets of Dotonbori in Osaka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오사카 도톤보리 에비스바시와 북적이는 거리 풍경
View of Ebisubashi from above in Dotonbori, Osaka | 오사카 도톤보리, 위에서 내려다본 에비스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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