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짐들을 싣고 파리에서 출발한다. 첫 번째 목적지는 Lyon(리옹). 28인치 캐리어 3개, 20인치 캐리어 1개, 40L 더플백 1개, 가득 찬 장바구니 3~4개에 기타 자질구레한 짐이 실렸다. 이 꼴이 난 경위를 구구절절 설명하면 글이 길어지고 지루해질 것 같으니 생략한다. 아니다. 간단하게 짚고 가자.
1. 경위서 : 경차에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이탈리아로 가게 된 이유
여자친구는 프랑스에서 박사 과정 및 포닥까지 마친 상태. 귀국을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 지낸 만큼 짐이 많다. 귀국 전 처리해야 할 일도 많다. 그래서 도우러 갔다. 9월 중순 프랑스 입국, 12월 중순 출국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파리행 경유, 직항 비교 리뷰]
왜 세 달이나 가 있었느냐. 쉥겐 국가 최장 체류 기간이 90일이기 때문. 프리랜서라 한 번 갈 때 뽕을 뽑고 온다. 이번이 세 번째 출국.
출발 전에 파리에 세 달 있을 집을 미리 구해 놓았다. 프랑스 현지 부동산이나 Leboncoin으로 구하기엔 외국인 신분상 쉽지 않아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구했다. 프잘사, 프랑스존 두 군데 열심히 구했다. 임대인이 한국에 거주해서 만나서 구두계약을 했다. 출국 2주 전에 뒤통수를 맞았다. 부랴부랴 2주만 머물 수 있는 집을 구해 출발했다.
파리에 짐 풀자마자 잠깐 자고 새벽 기차로 지방에 내려갔다. 회사 주차장에 대 놓은 여자친구의 차와, 상사의 집에 맡겨놓은 짐을 찾아 파리로 돌아왔다. 2주간 짐 정리도 하고 집도 구해봤다. 마음에 쏙 드는 집이 없어서 그냥 한 달 정도 훌쩍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 다녀와서 프랑스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나는 진성 J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P처럼 하기로 했다. 목적지와 숙소 정도만 3~7일 전쯤에 예약하자는 게 계획의 전부였다. 그렇게 일단 떠났다. 리옹으로.
2. 리옹으로!

518km, 5시간 가까이 운전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운전대를 잡아봤는데, 유럽 친구들 운전 참 잘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차로 준수를 칼같이 한다. 1차로는 무조건 추월차로다. 한국처럼 1차로 정속주행충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괜히 선진국이 아니다.
숙소는 리옹과 샤모니 중간 지점에 있다. 다음 목적지가 샤모니라서다. 싸서 예약했는데, 산꼭대기에 있었다. 야밤에 대관령 올라가는 길처럼 구불구불한 산길을 벌벌 떨며 올라갔다. 숙소 명은 L’appart de lônes[Booking.com링크] 인데, 궁금하면 눌러보기 바란다. 집은 좋다. 2박 3일에 11만 원 정도 들었다.

짐만 풀고 자고 일어나 느긋하게 리옹으로 출발했다. 톨게이트에서 빠꾸하는 빨간 차가 인상적이다. 외곽에 있는 그나마 저렴한 주차장(시간당 2유로 내외)에 차를 대고 지하철을 탔다. 24시간권에 6~7유로 했던 것 같다.

현대적인 지하철이다. 노후화된 일부 파리 노선과 비교가 안 된다. 2호선보다도 쾌적한 느낌이다. D선(노란색, 라인4) Vieux Lyon – Cathédrale Saint-Jean역에 내린다. 구시가지인 Vieux Lyon(비유 리옹, Old Lyon)으로 걸어갔다.
3. 리옹 대성당 Cathédrale Saint-Jean-Baptiste

Cathédrale Saint-Jean-Baptiste 리옹 대성당이 먼저 보인다. 자타공인 날씨요정인 내가 와서 그런지 하늘이 기가 막힌다. 우중충한 게 잘 어울린다.
아는 게 힘이니까 성당의 간단한 특징을 요약해 봤다.
-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짬뽕되었다.
- 12세기~15세기에 걸쳐 완성되었다(1180년 착공함).
- 14세기에 제작된 천문 시계 Astronomical Clock의 자동인형이 정해진 시간에 움직인다.
- 고딕 양식 스테인드글라스인 Rose Window 장미창이 있다.
- 대주교(Cathedra)가 있는 주교좌 성당이다. 그래서 리옹 주교좌 성당이라고도 부른다.
- 1600년에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치가 결혼한 곳이다.
- 1998년 구시가지 Vieux Lyon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 입장료는 무료다.
- 방문 추천 시간은 낮 시간대다. 자동인형 달린 시계를 봐야 하니까.

창이 보인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시기상 먼저인데, 천장은 마지막에 올렸으니 고딕 양식이 된 것이다. 벽은 두껍게, 문과 창은 반원형 아치로, 기둥과 기둥 머리는 단순하고 기하학적 형태를 보이게끔 로마네스크 양식을 따르다가 13세기 후반에 고딕 양식 유행이 시작되었단다. 그래서 창문하고 문에는 뾰족한 아치를 넣어 가벼운 느낌을 주고, 스테인드글라스도 넣고, 리브 볼트 천장으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그렇게 두 양식이 짬뽕되어서 역사적으로,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아졌다고.

기부하고 받아 온 초에 불을 붙인 모습이다. 나는 무교이고, 여자친구는 나이롱 천주교 신자이지만, 성당 갈 때마다 꼬박꼬박 돈 내고 불은 붙인다.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그렇게 한다. 아-멘
4.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성당(Basilique Notre-Dame de Fourvière) 방문
찜해 둔 식당이 있다. 먹고 싶은 메뉴도 정해 두었다. 구시가지 비유 리옹(Vieux Lyon)을 가로질러 간다.

15~17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이번에는 고딕 +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건물들이다. 역시 1998년에 대성당과 함께 동네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중세(고딕 양식)와 근세(르네상스)의 건축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참고로 근세는 르네상스(14~16C), 대항해 시대(15~17C), 종교 개혁(16C), 절대왕정(17~18C), 과학혁명(16~18C)을 포함하는 시대라고 한다. 이과라 잘 모른다.

원래 가려고 찜해 두었던 시당이 휴무일이다. 구글 지도에는 영업 중이라 쓰여 있는데 말이다. 돌아와서 대성당 앞 식당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가게 이름은 Auberge des canuts – Bouchon Lyonnais(오베르주 데 카뉘), 상세 리뷰는 글 [리옹, Auberge des canuts – Bouchon Lyonnais 논문급 후기 + 리뷰 1000개 분석(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다. 리옹 전통 음식들이 궁금하다면 꼭 참고 바란다.




5.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성당 Basilique Notre-Dame de Fourvière

리옹 대성당 출구에서 보이는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성당에 갔다. 걸어 올라갈 수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문명의 혜택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긴 여정을 위해 두 다리는 아낀다.
24시간 교통권으로 푸니쿨라(Funiculaire)를 탈 수 있다. 신도시도 아닐 텐데 내가 탄 모든 게 다 새삥이다.

리옹 대성당보다 화려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요약하고 가자.
- 푸르비에르 언덕(Fourvière Hill) 위에 있어서 푸르비에르 성당이다.
- 리옹 노트르담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 신고딕(Neo-Gothic) + 비잔틴(Neo-Byzantine) 양식이 혼합돼 있다.
- 1872년에 착공했고, 1896년에 완공됐다.
- 4개의 탑과 돔형 지붕을 가지고 있어 요새처럼 보인다.
- 내부가 매우 화려하다. 벽과 천장이 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 황금 성모상(Statue de la Vierge Dorée)이 있다. 리옹을 지켜주는 성모 마리아 상이다.
- 리옹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전망대를 가지고 있다.
- 1643년 흑사병에서 리옹을 구한 성모 마리아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지어졌다.
- 1998년에 리옹 구시가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 입장료는 무료다.
- 방문 추천 시간은 일몰 전후다. 일몰과 야경이 끝내준단다.

화려하긴 하다. 처음 들어섰을 때의 느낌부터 다르다. 초록색 천장 때문인지 포근한 느낌이 든다. 내 기준으로는 바티칸, 사그라다 파밀리아보단 아니지만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리옹 대성당 먼저 보고 아무 기대감 없이 와서 더 그랬을까?

리옹 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진이 이 구도 아닐까? 해가 있었다면 지붕 색감이 더 예뻤을 텐데 살짝 아쉽다. 뻥 뚫린 게 시원시원하다.
6. 리옹 여행을 마무리하며,
한 달 남짓한 경차 여행을 기획하며 했던 다짐 중 하나는, 숙제하듯 관광지를 돌지 말자는 것이었다. 운전도 하고 관광도 하고 일도 하고 다 해야 한다. 어찌 보면 온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디지털 노마드 같은 삶이다. 숙소를 바꾸어 가며 일도 하면서 여유가 될 때 관광도 하는. 그래서 그런지 여행의 밀도가 높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래서 그런지 종래에는 그 어떤 여행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인생 여행이 되었다.
리옹은 그 인생 여행의 출발점이다. 이제 변곡점인 샤모니를 향해 떠날 차례다.
6. 추가 팁
- 리옹 시내 뷰포인트 : 푸르비에르 언덕 외에도 크루아-루스(Croix-Rousse) 지역이나 프레스킬(Presqu’île)의 일부 전망대에서 강과 시내를 다른 각도로 내려다볼 수 있다. 색다른 매력이 있으니 시간 되면 방문해 봐도 좋을 듯하다.
- 크리스마스 등 축제 기간 : 리옹은 빛 축제(Fête des Lumières)로도 유명하다. 도시 전체가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 시기에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놓치지 말자.
- 근교 여행 : 아비뇽(Avignon), 액상 프로방스(Aix-en-Provence)로 이동이 편하다. 우리가 갈 샤모니로도 쉽게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