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sta(아오스타),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 [FR-IT 경차 노마드 여행 5부]

QC Terme Chamonix를 20시까지 즐겼다.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차에 타니 21시. 밀라노까지 가기엔 거리도 멀고 시간도 늦었다. 중간 기착지가 필요했다. 지도를 펼쳐 밀라노에 가는 경로를 살펴보니 그 유명한 ‘마터호른(Matterhorn)’이 보인다. 이탈리아 알프스에서도 볼 수 있나 보다.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아?

사실, 처음부터 이탈리아를 염두에 둔 건 아니다. 샤모니에서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었다. 스위스냐, 이탈리아냐. 스위스 인터라켄이나 그린델발트의 대자연이 끌렸다. 그 유명한 앨리스 할머니네[링크]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방문 날짜를 조율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날씨 예보가 좋지 않았다. 비싼 물가에 우중충한 날씨라니. 결국 이탈리아 행을 택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아오스타(Aosta)다.

1. 60유로짜리 터널과 산꼭대기 숙소

The Mont Blanc Tunnel marking the border between France and Italy.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을 가르는 몽블랑 터널.
몽블랑을 꿰뚫는 국경 터널 | The border tunnel piercing through Mont Blanc

깊어가는 밤, 고속도로에 올랐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대관령 같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몽블랑을 넘거나, 몽블랑 터널(Tunnel du Mont-Blanc)을 지나거나. 시간을 아끼기 위해 터널을 선택했다. 60유로라는 통행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아꼈지만, 돈은 아끼지 못했다.

Official toll fees for Mont Blanc Tunnel as of January 1, 2025. 2025년 1월 1일 기준 몽블랑 터널 공식 요금표.
공식 홈페이지 요금표 | Official toll fees [출처 https://tunnelmb.net/]

요금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 방문 전 위의 공식 홈페이지 요금표 바로가기를 눌러 직접 확인하는 편이 정확할 것. 

2025년 1월부터는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55.8유로, 반대 방향은 54.8유로다. 이 터널, 꽤 역사가 있다.

  • 약 11.6km 길이의 세계 최장 고산 터널 중 하나
  • 1965년 개통, 현재까지 프랑스-이탈리아를 잇는 주요 도로 중 하나

2시간 17분 동안 97km를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6박 7일에 270유로, 하루 45유로의 저렴한 숙소다. 밀라노와 다른 관광지들의 비싼 숙박비를 생각하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여행보다 노마드 생활에 초점을 맞춘 만큼, 저렴한 곳에서 오래 머무는 것이 전반적인 생활비 절감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여행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적절한 균형을 찾기로 했다.

가격대가 좋은 만큼 이번에도 산꼭대기 숙소였다. 1000cc 경차 Aygo가 신음하듯 가파른 길을 올랐다. 도착하니 마을은 고요했다. 한밤중에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짐을 옮긴 뒤, 여독을 풀기 위해 빠르게 잠에 들었다.

A charming stone house nestled in the Italian mountains, surrounded by lush greenery and breathtaking views. 이탈리아 산중턱에 자리한 아늑한 돌집, 푸른 자연과 탁 트인 전망이 어우러진 곳.
외딴 이탈리아 산중턱의 돌집 | A secluded stone house in the Italian mountains

다음 날 아침, 동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정원과 탁 트인 전경. 밤에는 상상도 못했던 아름다움이었다.

맞은편 집에서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다. 이탈리아의 이 깊은 산골에서 아시아인을 보는 일이 흔치 않으니 당연했다. 처음엔 살짝 숨듯 바라보시더니, 여자친구가 집주인과 프랑스어로 대화했다는 걸 전해들으셨는지 활짝 웃으며 말을 걸어오셨다. 순간, 조용한 시선이 따뜻한 환대로 변했다.

숙소 이름은 ‘Hameau Gubioche, casa vacanze’다. 우리가 예약했던 Booking.com 링크[클릭시 이동]를 남긴다.

둘째 날은 햇살이 좋아 빨래를 널고, 동네 마트 Conad에서 장을 봤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가본 마트, 처음 보는 브랜드들. 닭다리가 유난히 저렴했고, 토끼 고기가 흔했다. 그런데 토끼 눈까지 그대로 담긴 팩을 보고는 흠칫 놀라기도.

셋째 날, 가까운 도시 아오스타(Aosta)로 향했다. 알프스를 다시 오르기엔 몸이 버거웠고, 토리노는 너무 멀었다. 가장 현실적인 선택, 그리고 처음 만나는 도시. 그냥, 가보고 싶었다.

2.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아오스타(Aosta)

Aosta travel contrasting modern buildings and ancient walls Aosta여행 현대적 건물과 고대 돌벽이 대비를 이루는 모습

도시 중심부로 향할수록 현대적인 건물들이 늘어섰다. 특이하게도 도로 곳곳에 고대 유적이 남아있다. 마치 시간이 겹쳐진 듯한 풍경이다.

저렴한 주차장을 찾았다. Parcheggio Vicino Mercatini[링크]다. 18시 이후는 무료, 그 전까지는 하루에 5유로 정도 하는 것 같다.

The ancient Roman gate, Porta Pretoria, in Aosta, Italy, showcasing its double-arch structure and historic significance. 이탈리아 아오스타에 위치한 고대 로마 관문 포르타 프레토리아, 이중 아치 구조와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적.
고대 로마의 유산 포르타 프레토리아 | The ancient Roman heritage, Porta Pretoria

첫 번째로 마주한 유적은 포르타 프레토리아(Porta Pretoria)[링크]다. 마을의 동쪽 관문이다.

  • Porta Pretoria, 이탈리아 아오스타의 로마 시대 주요 관문
  • 기원전 25년 건설, 이중 아치 구조가 특징
  • 내/외부 아치 사이에 방어용 공간이 존재
  • 고대 로마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유적
  • 시민들이 작은 시장을 열었던 장소
A charming street in Aosta, Italy, where historic architecture meets modern life, featuring a man walking his wolf-like dog. 이탈리아 아오스타의 고풍스러운 거리, 역사적인 건물 사이를 늑대처럼 생긴 개와 함께 걷는 남성의 모습.
아오스타의 골목길 | The charming streets of Aosta

이어진 시내에서 조니뎁st 아저씨와 마주쳤다. 상남자답게 늑대를 끌고 가고 있다. 그들 뒤로 시간이 멈춘 듯한 고풍스러운 골목이 이어졌다. 자동차 소리 하나 없는 보행자 천국이었다.

이곳은 비아 포르타 프레토리아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숨결이 살아있는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현대적인 상점들이 자리잡았다. 지역 특산품과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 골목 구석구석에서 아오스타의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축제 기간이면 이 고즈넉한 골목이 춤과 노래로 물든다고 한다.

Piazza Émile Chanoux, the central square of Aosta, Italy, surrounded by historic buildings. 이탈리아 아오스타의 중심 광장, 피아차 에밀 샤누. 역사적인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피아차 에밀 샤누 광장 | Piazza Émile Chanoux, the heart of Aosta

골목 끝에서 피아차 에밀 샤누(Piazza Émile Chanoux)[링크]를 만났다. 이탈리아어로 ‘Piazza’는 ‘광장’이란 뜻이다. 에밀 샤누는 나치와 파시즘에 맞서 싸운 저항 운동가다.

이 광장의 역사를 살펴보자.

  • 원래는 사르데냐-피에몬테 국왕의 이름을 따 명명
  • 제2차 세계 대전 중 희생된 에밀 샤누를 기리며 현재 이름으로 변경
  • 시청사(Hôtel de Ville)를 비롯한 역사적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음
  • 시청사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내부에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있음
  • 1924년 제작된 아오스타 계곡 병사 기념비가 있음
  • 도시의 중심 광장이자 문화의 심장부
  • 축제와 행사가 열리는 시민들의 사랑방

이 광장을 거닐기 전에

Teatro Romano(로마 극장)를 보기 위해서 우측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The Roman Theatre in Aosta, Italy, an ancient structure built in the 1st century with a towering 22-meter facade. 이탈리아 아오스타에 위치한 로마 극장, 1세기에 지어진 고대 유적으로 22미터 높이의 웅장한 외벽이 특징.
로마 극장 | The Roman Theatre of Aosta

무료 입장이래서 방문했는데 가짜 정보였다. 입장료는 단돈 10유로! 대담하게 Pass하고 구글 어스로 구경했다. 참고로 2025년 5월까지 휴관이다.

로마 극장(Teatro Romano, Roman Theatre)[링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1세기에 지어진 고대 로마의 걸작
  • 22미터 높이의 웅장한 외벽
  • 원형 아치와 창문이 특징적인 건축 양식
  • 4천 명을 수용했던 대형 공연장
  • 현재도 문화 행사와 공연이 열리는 살아있는 역사
  • 겨울밤 조명에 물들면 더욱 아름다운 야경

입장권 하나로 다섯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자세한 요금표는 조금 뒤에 살펴보자. 우리의 발자취 순서대로 글을 쓰는 중이니.

Croix-de-Ville in Aosta, Italy, a historic stone cross with a drinking fountain at its base. 이탈리아 아오스타의 Croix-de-Ville, 십자가 아래로 맑은 음용수가 흐르는 역사적 분수.
도시의 십자가이자 오아시스 | Croix-de-Ville, a traveler’s oasis

광장을 가로질러 Croix-de-ville[링크]에 도착했다. ‘도시의 십자가’라는 뜻이다. 십자가 아래로 맑은 음용수가 졸졸 흐른다. 지친 여행자들과 목마른 강아지들의 오아시스다.

 

Aosta Cathedral, a historic church blending Romanesque and Gothic styles, with intricate frescoes and mosaics.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조화된 아오스타 대성당, 정교한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가 돋보이는 역사적인 성당.
아오스타 대성당 | Aosta Cathedral, a historic landmark

다음은 Aosta Cathedral이다. 정식 명칭은 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 e San Giovanni Battista[링크]다.

햇빛을 받아 성스럽게 빛나는 외벽이 인상적이다. 대도시의 웅장한 성당들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입구에는 휴대폰 소리를 끄고, 반려동물 출입을 제한한다는 안내가 있다.

묵직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요한 어둠이 맞이한다. 성당의 역사를 살펴보자.

  • 아오스타 중심부의 상징적인 성당
  • 4세기 초기 건축, 11세기와 15세기에 걸쳐 확장
  •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절묘한 조화
  • 내부의 비잔틴 모자이크와 중세 프레스코화
  • 아오스타의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
Ancient ruins beneath Aosta Cathedral, visible through a glass floor, alongside a candle-lit altar for prayers. 아오스타 대성당의 유리 바닥 아래 보이는 고대 유적과 기도를 위한 촛불 제단.
소원을 말해봐 | Make a wish in Aosta Cathedral

바닥의 유리창 너머로 지하 유적이 보인다. 성당 이전에 있었던 초기 기독교 예배당과 무덤의 흔적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한 바퀴 돌았다. 유럽 성당 순례의 필수 코스인 양초 봉헌도 잊지 않았다. 무교지만, 작은 소원 하나 빌어본다. 에이-맨.

A ticket sign for "Aosta Archeologica," a combined pass for five archaeological sites in Aosta, Italy. 아오스타의 다섯 곳 고고학 유적을 방문할 수 있는 "Aosta Archeologica" 통합 티켓 안내판.
아오스타 고고학 유적 통합 티켓 | Aosta Archeologica Combined Ticket

성당 옆에서 Aosta archeologica 요금표를 발견했다. 다섯 군데 고고학 유적지를 묶은 통합 티켓이다.

  • Regional Archaeological Museum (MAR)
  • Criptoportico Forense
  • Teatro Romano
  • San Lorenzo의 고대 기독교 교회
  • Area Megalitica

일반 10유로, 할인 8유로, 청년 3유로, 18세 이하는 무료다.

The Alpini soldier statue in Aosta, Italy, honoring the world’s oldest mountain infantry unit. 이탈리아 아오스타의 알피니 병사 동상,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산악 전투 부대를 기리는 기념물.
알피니 병사 동상과 나 | The Alpini Soldier Statue and Me

피아차 에밀 샤누를 다시 지나는데 알피니(Alpini) 병사의 동상이 우리를 맞이했다. 알피니는 세계 최고(最古)의 산악 전투 부대다. 1872년에 창설되어 알프스와 아펜니노 산맥에서 활약했다.

포즈를 따라하며 사진을 찎었으니, 동상의 특징을 살펴보자.

  • 전통 알피니 모자(cappello alpino) 착용
  • 전투복과 탄띠, 전투 장비 묘사
  • 결연한 표정으로 전진하는 자세
  • 받침대에 새겨진 1915-1940년은 두 차례 세계대전 참전 기간
  • 아오스타 계곡 출신 산악 부대원들의 희생을 기리는 상징물

3. 젤라또 투어 2탄, 아오스타의 달콤한 맛

A gelato from Aosta, Italy, featuring pear, strawberry, and hazelnut chocolate flavors. 이탈리아 아오스타에서 맛본 젤라또, 배, 딸기, 헤이즐넛 초코 맛의 조화.
아오스타의 젤라또 | Gelato in Aosta

프랑스 샤모니에서 시작된 젤라또 투어. 아오스타도 예외는 아니다. 젤라또 맛집을 열심히 찾았다. 가게 이름은 VerdePistacchio il Gelato Artigianale sempre fresco[링크], 구글 평점 4.6점, 리뷰 93개의 아오스타 최고 젤라또 맛집이다. 가게 정보에 달린 무지개색 하트가 눈길을 끈다.    …?

위에서부터 배, 딸기, 헤이즐넛 초코 맛. 젤라또는 언제나 맛있고, 언제나 비싸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계절과 풍토가 녹아든 미식 예술이다. 우리는 지금 “ART”를 맛보고 있는 것이다.

4. 마치며,

A scenic view of the mountains from a parking lot in Aosta, Italy, where history and nature coexist. 이탈리아 아오스타의 주차장에서 바라본 산맥의 풍경,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도시.
아오스타의 마지막 풍경 | The final view of Aosta

“주차장에서 바라본 산맥의 풍경이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곳 아오스타는 이탈리아 알프스와 맞닿아 있는 보석 같은 도시다. 알프스의 반대편에서 도시를 감싸안은 이탈리아의 산맥은 또 다른 매력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고대 로마부터 현대까지, 시간의 켜가 차곡차곡 쌓인 곳이다. 포르타 프레토리아의 웅장한 아치와 로마 극장의 흔적은 2000년 전 로마 제국의 영광을 전한다. 중세의 골목길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광장의 알피니 동상은 근현대의 아픈 역사를 증언한다.

작은 도시지만 볼거리가 풍성하다. 성당의 고요한 내부에서는 신성한 기운이, 활기찬 거리에서는 현대 이탈리아의 낭만이 피어난다. 조니뎁을 닮은 아저씨와 그의 늑대개처럼, 독특한 캐릭터도 만날 수 있다. VerdePistacchio의 달콤했던 젤라또는 입 안에서 녹아내린 지 오래지만, 그 맛은 아직도 혀끝에 남아있다.

이 작은 도시가 선물한 추억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거리, 친절한 현지인들의 미소, 알프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까지. 아오스타는 우리에게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을 알려주었다. 바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는 특별한 순간들이다.”

라고 마무리하면 너무 거창해지지…?

산 꼭대기 숙소에서 며칠 더 머물며 마터호른도 가고, 토리노도 가고, 일도 하고 하다가 밀라노로 떠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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