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리노로 가는 길
고속도로를 달린다. 오전엔 일하고 오후엔 잠시 바람 쐬러 토리노(Torino)로 향한다. 1시간 반 남짓한 시간. 운전한 거리는 97km. 창밖으로 펼쳐지는 고속도로의 풍경조차 이국적이다. 이국이니 당연한가?
프랑스도 그렇고 이탈리아도 그렇고, 톨게이트에 우리가 진입하는 도시가 어디인지 친절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거기가 거기인 느낌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행의 묘미 아닐까?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설렘. 외곽에서 도시의 안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토리노는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온 뒤 처음으로 방문한 대도시다.
대도시라 써 놓고서 중도시인지 대도시인지 찾아보았다. 로마, 밀라노, 나폴리 다음으로 큰 대도시가 맞단다. 인구 약 85만 명, 광역권 포함하면 약 220만 명이고, 1861년 이탈리아 통일 당시 첫 번째 수도였다고. 유벤투스 FC의 홈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나도 한국인인지라 토리노 하면 2006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만 생각난다.
주차장을 향해 좌회전을 하다 잠시 멈췄는데, 트람이 반대편에서 좌회전을 한다. 금속의 무게가 레일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트램 앞으로는 버스가, 뒤로는 일반 차량이 서 있었다. 독특하게도 트램과 차량이 도로를 공유하는 구간이 꽤 있다. 유럽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아,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서울 한복판에도 철로가 있어 차랑 같이 다니지 않았었나 싶다. 직접 본 세대는 아니라, 독특한 매력에 매료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순간을 목격한 느낌이다.
2. 주차장과 화장실, 팁 아닌 팁
파킹 비토리오 파크(Parking Vittorio Park) 주차장[링크]에 도착했다. 가격은 시간당 1.8유로 정도. 구글 기준 평점 4.3점에 1,631개의 리뷰가 달린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주차장이다. 주차장은 가격과 안전성이 생명이다. 여행자의 첫 번째 안식처.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으로 텔레파스(TELEPASS)라는 단어가 보인다. 우리나라의 하이패스랑 비슷한 고속도로 통행료 자동 결제 시스템인데, 이제는 공항, 기차역, 대형 쇼핑몰, 도심 주차장, ZTL(제한 교통 구역) 등 다양한 서비스로 확장되었단다. 우리는 이탈리아인이 아니니 없다. 차도 프랑스 차량이고. 여행자의 숙명, 항상 ‘손님’으로 남는 것.
차를 대고 나왔다. 화장실이 가고 싶다. 유럽 여행에서 불편한 것 중 하나가 화장실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조금만 찾아보아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깨끗한 화장실이 넘쳐나는데, 유럽은 그렇지가 못하다. 여행 중 용무가 생겼을 때 화장실을 찾는 게 항상 일이다. 정 급하면 1~2유로 내고 유료 화장실 쓰는 거고, 그 정도로 급한 게 아니라면 그래도 무료로 이용할 곳을 찾아보는 거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돈으로 환산되는 유럽의 아이러니.
가장 만만한 곳은 백화점이나 이케아 같은 대형 쇼핑몰이다. 대부분 무료다. 아쉽게도 근처에는 없다. 그다음으로 찾아봐야할 곳은 대형 패스트푸드점인 버거킹, 맥도날드 등. 무료인 경우도 있고, 구매 고객에게만 부분 무료 이용인 경우도 있다. 다행히도 시내로 가는 길에 맥도날드가 있다. 황금 아치는 때로 구원의 문이 된다.
무료 화장실은 아니다. 이용료 1유로. 두 명이니 2유로를 내야 하는데, 커피값이 2~2.5유로다. 한 잔 시키고 코드를 받아 둘 다 이용했다. 카페인 수혈과 동시에 배출. 이 정도면 괜찮은 거래 아닐까? 여행자의 소소한 승리.
3. 토리노의 중심, 예술과 역사의 거리
홀가분한 마음으로 거리로 나선다. 한 블럭 이동하여 마르크 디두(Marc Didou)의 “에코(Eco)” 조각상[링크]이 있는 골목으로 진입했다. 주세페 베르디라는 이름의 길(Via Giuseppe Verdi)이다. 왼쪽편 벽이 대자보와 그래피티로 가득차 있다.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라, 지역 예술가들이 열심히 창의력을 발휘해 놓은 듯한데, 무언가 썩 와닿는 느낌은 아니다. 내가 문외한이라 그런가? 아니면 예술은 때로 이해보다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골목골목을 지나는데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다른 언어로 이루어진 웅성거림,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 그리고 딱 봐도 이곳의 랜드마크로 보이는 것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늘을 찌르는 첨탑.
몰레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링크]다. 단순 랜드마크라고 하기엔 섭하다. 국가적 위상이 엄청난 건축물이니. 오죽하면 이탈리아에서 발행한 2유로 동전에 새겨진 주인공이다. 이 위상 높은 건축물은 토리노의 자존심이자 영혼이다. 167.5미터 높이의 첨탑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며 도시의 실루엣을 완성한다.
그럴만한 건축물이니, 기본적인 건 알고 가자. 그냥 쓱 읽고 지나가면 된다.
- 몰레 안토넬리아나는 토리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도시의 상징 같은 곳
- 원래 유대교 회당으로 계획되었지만, 중간에 계획이 변경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됨
- 지금은 국립 영화 박물관으로 사용되며, 영화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공간
- 건축가는 알레산드로 안토넬리로, 그의 이름에서 건물명이 유래됨
- 1863년에 공사를 시작해 1889년에 완공된 건물로, 오랜 역사를 지님
- 높이가 167.5m로, 당시에도 상당히 높은 건축물 중 하나였음
- 신고전주의 양식과 독창적인 디자인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냄
- 내부에는 국립 영화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어 다양한 전시물을 관람 가능
- 영화의 역사부터 촬영 장비, 포스터, 소품까지 다채로운 콘텐츠가 준비됨
- 중앙에는 거대한 스크린이 설치되어 몰입감을 높이는 연출이 돋보임
- 유리 엘리베이터를 타면 전망대로 이동할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을 제공
- 전망대에서는 토리노 시내와 멀리 보이는 알프스의 풍경이 펼쳐짐
- 특히 야경이 아름다워 해가 질 무렵 방문하면 더욱 특별한 느낌
- 이탈리아가 발행하는 2유로 동전 뒷면에 새겨질 만큼 상징적인 건축물
- 토리노 국제 영화제 같은 주요 행사도 이곳에서 개최되며 문화적 의미도 큼
- 박물관과 전망대 입장권은 따로 구매할 수도 있고, 통합권도 선택 가능
- 성수기에는 전망대 엘리베이터 대기가 길어질 수 있어 사전 예약이 유리함
- 영화, 문화, 건축, 역사가 어우러진 토리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입장료 없이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싶어 들어가보니, 앞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예매 안 해 왔다고 쫓겨나는 중이라 같이 나왔다. 맞은편 기념품샵에 걸린 엽서를 보니, 온통 몰레 안토넬리아나 사진이 박혀 있다. 유명하긴 한가 보다. 엽서 속 건물은 다양한 각도에서 찍혔지만, 그 웅장함은 어떤 각도에서도 압도적이다.
혹시 공식 홈페이지 및 예약 페이지가 필요할까봐 준비했다.
늦은 시간이라 우리는 패스했다. 이렇게 유명한 줄 알았으면, 늦었더라도 한번 들어가 볼 걸. 까비.
길가에 멀뚱히 서서 근처 랜드마크를 검색해 본다. 토리노 왕궁쪽에 이런저런 랜드마크들이 몰려 있는 것 같아 목적지로 정한다. 지아르디니 레알리 디 토리노(Giardini Reali di Torino) 정원을 가로지른다. 푸른 잎사귀 사이로 햇살이 스며든다.
4. 토리노 왕실의 발자취를 따라서
팔라초 마다마(Palazzo Madama)[링크]가 먼저 보인다. 옆모습과 뒷모습이다. 이것도 유구한 역사를 가진 건축물이다. 심지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로마 시대의 성문에서 중세 요새로, 그리고 바로크 양식의 궁전으로 변모한 이 건물은 시간의 층위를 그대로 담고 있다. 창문에 비친 햇살이 마치 역사의 증인처럼 빛나고 있다.
이곳도 간단히 정리하고 가자.
- 토리노의 주요 광장인 피아자 카스텔로(Piazza Castello) 한가운데 자리하며,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용도로 사용됨
- 로마 시대에는 방어 요새였고, 중세 시대에는 성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사보이 가문의 귀족 여성들이 거주하면서 ‘마다마(Madama, 귀부인)’라는 이름이 붙음
- 18세기 초, 건축가 필리포 유바라(Filippo Juvarra)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정면을 추가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춤
- 외관은 중세 성채와 바로크 양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구조로, 한쪽은 고풍스러운 탑이 남아 있고, 다른 한쪽은 우아한 바로크 양식의 입구가 특징
- 내부는 현재 토리노 시립 고미술관(Museo Civico d’Arte Antica)으로 운영되며, 중세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까지의 다양한 예술품을 전시
- 회화, 조각, 도자기, 가구 등 이탈리아 예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
- 웅장한 계단과 화려한 천장 장식이 돋보이며, 궁전 내부를 거닐며 귀족 문화의 흔적을 체험할 수 있음
- 맨 위층 전망대에서는 피아자 카스텔로와 토리노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어 사진 촬영 명소로도 인기
- 입장료는 전시관 이용 여부에 따라 다르며, 토리노+피에몬테 카드(Torino+Piemonte Card)를 이용하면 무료 입장 가능
조금 더 가니 피아자 카스텔로(Piazza Castello)[링크]가 보인다. 왼쪽이 위에서 본 팔라초 마다마의 입구고, 중앙이 광장이다. 우측의 건물은 딱히 의미 있는 건물은 아니다. 하지만 광장은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뒤섞여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젤라토를 먹고, 또 누군가는 그저 앉아 사람 구경을 하고 있다.
- 피아자 카스텔로(Piazza Castello)는 토리노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표적인 광장으로,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공간
- 14세기 사보이 가문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이후 수 세기 동안 토리노의 정치, 문화,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해옴
- 광장 이름인 ‘카스텔로(Castello)’는 중세 요새였던 팔라초 마다마(Palazzo Madama)에서 유래됨
- 광장을 둘러싸고 팔라초 마다마, 왕궁(팔라초 레알레, Palazzo Reale), 왕립 도서관(Biblioteca Reale), 왕립 극장(Teatro Regio) 등 주요 역사적 건축물이 자리함
-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광장을 둘러싸며,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냄
- 과거에는 군사 행진과 공식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었으며, 지금은 시민들과 관광객이 모이는 주요 명소
- 광장 곳곳에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어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기 좋으며, 거리 공연과 행사도 자주 열림
- 광장에서 이어지는 도로는 비토리오 베네토 광장(Piazza Vittorio Veneto)과 몰레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로 연결되어 있어 토리노 주요 관광지를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위치
- 대중교통 접근성이 뛰어나며, 주요 버스 및 트램 노선이 지나가는 교통 요지
- 역사적인 건축물과 현대적인 도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토리노 여행의 출발점이자 필수 방문지
스페인 마드리드의 곰 석상이 있는 솔 광장 느낌이랄까?
우측으로는 토리노 왕궁(Palazzo Reale di Torino)[링크]이 보인다. 역시 세계문화유산이다. 감히 이야기하자면, 권력의 상징이자 예술의 집합체다. 화려한 파사드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위엄을 자랑한다.
안쪽으로 향하는 길에 조각상이 여럿 있다. 건물 뒷편으로는 우리가 아까 걸어 온 로열 가든(Giardini Reali) 중에서도 중심 정원으로 꼽히는 지아르디노 두칼레(Giardino Ducale)가 있다.
왕궁 내부는 외부의 모습과 대비될 정도로 화려하다는데, 들어가보지는 않았으니 짧은 설명으로 대체한다.
- 토리노 왕궁(Palazzo Reale di Torino)은 토리노 중심부에 위치한 사보이 가문의 왕궁으로, 한때 이탈리아를 통치했던 왕실의 거처
- 16세기 후반 사보이 가문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개조를 거치며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으로 완성됨
- 외관은 단순하고 절제된 디자인이지만, 내부는 금박 장식과 호화로운 벽화, 정교한 가구들로 화려하게 꾸며짐
- 왕실의 거실, 연회장, 응접실, 왕좌의 방 등 다양한 공간을 둘러볼 수 있으며, 각 방마다 예술품과 장식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냄
- 왕궁 내부에는 사보이 왕가의 방대한 무기 컬렉션을 전시하는 무기고(Armeria Reale)가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 및 갑옷 컬렉션 중 하나로 평가됨
- 왕궁 뒤편에는 조경이 아름다운 로열 가든(Giardini Reali)이 자리하고 있어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은 장소
-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사보이 가문의 유산을 대표하는 건축물
-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며, 사보이 왕가의 역사와 유럽 왕실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음
- 피아자 카스텔로(Piazza Castello)에 위치해 있어, 팔라초 마다마(Palazzo Madama)와 함께 방문하기 좋은 코스
- 입장권은 왕궁 내부 관람권과 왕립 무기고, 왕립 도서관 등을 포함한 패스로 구매할 수 있으며, 토리노+피에몬테 카드(Torino+Piemonte Card) 이용 시 무료 입장 가능
- 토리노에서 이탈리아 왕실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필수 방문지
박물관이나 전시관 관람은 우리의 여행 취향은 아니라, 대부분의 랜드마크를 겉에서만 보았다. 외부로 이어지는 기념품샵이 딱 보였으면 구경이라도 했을 건데, 잘 안 보이더라. 어찌됐건 소정의 목표였던 토리노에서 바람쐬기는 완료했으니, 식사를 하러 갔다. 때로는 건물 안보다 바깥에서 바라본 모습이 더 아름다운 법이다.
항상 우리에게 가성비 좋은 음식을 소개해 주는 더 포크(The folk) 어플, 유럽에서 정상적인 저녁 식사를 하려면 두 명에 10만 원 돈은 드는데, 외식 어플을 적절히 사용하면, 적게는 10~30%에서 많게는 50%까지도 절약이 가능하다. 유럽 곳곳에서 애용했다.
5. 오랜만의 외식
우리가 선택한 식당은 투베리 레스토랑(Touberi Restaurant)[링크], 구글 평점 4.5에 612개의 리뷰가 달린 일반 식당이다. 번역을 위해 찍은 사진들이라 전체가 온전히 잘 나온 메뉴판은 없는데, 통감자 요리가 많은 편. 일단 토리노 전통 음식을 파는 곳은 아니다.
식전빵이 먼저 나왔다. 코페르토(Coperto)인 듯한데, 이 기본 빵과 함께 테이블 세팅 요금이 청구된다. 이탈리아에선 기본이다. 일반적으로 이 빵을 먹든 안 먹든 돈은 지불해야 하고, 일부 레스토랑에서 빵에 손대지 않으면 청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명확하게 하려면 계산 시에 “빵과 코페르토”가 포함되었는지 물어보는 게 확실하다.
먹을 생각이 없다면, 애초에 빵을 가져오지 말라 요청하고, 이후 영수증에서 “코페르토(Coperto)” 또는 “빵(Pane)” 항목을 확인하자. 만약 추가로 빵을 요청했으면 요금이 더 청구될 수도 있다. 알고싶지 않았었는데.
두 종의 에피타이저 중 첫 번째, 비프 리턴(BEEF RETURN)이다.
비프 리턴은 이탈리아 피에몬트 지역의 대표 요리인 비텔로 토나토(Vitello Tonnato)인 듯하다. 얇게 썬 송아지 고기 위에 소스가 뿌려져 있다. 조화롭다. 특별하기보단 익숙함에 가까운 맛이다.
다음은 두 번째 에피타이저 라 피치리다(La Picciridda)다.
라 피치리다는 가지 파르미지아나(Parmigiana di Melanzane)인 듯하다. 가지를 겹겹이 쌓고 토마토 소스와 치즈를 넣어 오븐에 구운 요리다. 가지의 부드러움과 치즈의 고소함, 토마토의 상큼함이 삼위일체를 이룬다.
맛은 둘 다 합격점.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십분 다했다.
첫 번째 메인는 로스트메리(Roastmary)다. 훈제용 연기가 갖힌 플라스틱 돔으로 플레이트가 씌워져 서빙되는데, 1~2분 뒤에 열고 먹으라고 안내해 준다.
로스트메리는 통째로 구운 훈제 감자 안에 로스트비프와 스트라차텔라 치즈, 토마토 등 다양한 토핑이 올라간 요리다. 전통 음식은 아니고, 이 레스토랑만의 퓨전 요리라 해야 할까? 뚜껑을 열자 연기가 피어오르며 후각을 자극한다. 익숙한 훈제향.
감자가 너무 크고 양이 많다. 감자 속 토핑은 맛있다. 감자를 좋아하는 편인데도, 밸런스가 썩 좋지는 않아 쏘쏘.
두 번째 메인 요리는 미스 폴포(Miss Polpo)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문어 요리다. 근데 감자가 베이스인. 구운 문어(polpo grigliato), 감자, 튀긴 애호박(corallo al nero di seppia)에 약간 매콤한 맛이 가미된 토마토 소스가 들어가 있다.
야들바삭한 게 맛있었다. 문어의 쫄깃함과 감자의 포근함이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디저트로는 카놀로 바로또(Cannolo Barotto)와 아나나스 소르베(Ananas Sorbett)를 주문했다.
카놀로 바로또는 시칠리아 전통 디저트인 카놀리를 변형한 디저트 느낌이다. 미니 버전의 카놀리가 세 조각 나오는데, 리코타 치즈 크림이 들어가 있고, 부르넷(barolo chinato)과 아마레토(amaretto) 맛이 가미된 크림이 사용되었다. 장식은 슈가 파우더와 크럼블 쿠키로 했다. 한 입 베어 물자 이탈리아의 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아나나스 소르베는 이름 그대로 파인애플 셔벗, 식사의 마지막에 서서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상큼함으로 마무리하는 여정.
메인 요리만 빼고는 괜찮았던 저녁식사. 가끔은 완벽하지 않은 것도 추억이 된다.
6. 마치며,
밖으로 나오니 어둑어둑해졌다. 이탈리아의 밤, 밝게 빛나는 광장은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가로등 불빛 아래 건물들은 낮과는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계산한다. 3시간은 넘고, 4시간은 안 된 주차 시간, 총 6.3유로가 나왔다. 가깝고 저렴하고 안전한 대형 주차장을 찾아 주차해서 이 정도 가격인데, 시내랑 조금 더 가까운 노상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했어도 시간당 0.1~0.2유로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았을 테다. 그래도 지하가 좀 더 안전한 느낌적인 느낌.
유럽의 고속도로에는 가로등이 없다. 그래서 상향등을 켜고 어둠 속을 달려야 한다. 가로등을 설치하지 않아 일부러 어둡게 만들면, 오히려 운전자가 긴장하여 사고율이 줄어든다 했었다.
토리노의 불빛은 점점 멀어지고, 앞에는 어둠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이날의 기억은 선명하게 빛난다. 몰레 안토넬리아나의 첨탑, 피아자 카스텔로의 활기, 팔라초 마다마의 위엄, 그리고 투베리 레스토랑에서 맛본 통감자까지.
여행은 이렇게 순간의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모자이크를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토리노는 우리 여행의 모자이크에 또 하나의 빛나는 조각을 더했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밀라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