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에 있는 소도시 빵뽈(Paimpol), 이전 포스팅들과 마찬가지로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이다. 그렇다면 여길 왜 갔느냐. Lannion(라니옹)[링크]에 반 년쯤 거주했었는데, 그곳에는 규모가 있는 아시안 마켓이 없었다. 나름 대기업이 먹여살리고 있는 도시라 앙떼흐마셰(Intermarché, 앙떼르마르셰), 르끌레흐(E.Leclerc, 르끌레르), 까르푸(Carrefour), 카지노(Casino), 리들(Lidl), 그헝프헤(Grand Frais) 같은 대형마트들도 다 있었고, 다이소 같은 악시옹(Action), 이것저것 떨이 제품을 파는 NOZ, 다 있었는데 아시안 마트만 없었다! 너무한 거 아니냐고!
아시안이 거의 없는 동네긴 했으니 어쩔 수 없다. 어쨌든 그래서 김치를 포함한 한국 식품, 아시안 식품을 사려면 갱강(Guingamp)이나 생브리외(Saint-Brieuc)까지 가야 했다. 가끔은 훨씬 큰 아시안 마트가 있는 렌(Rennes)까지 가서 장을 봐 올 때도 있었다.
아무튼, 가끔 갱강과 생브리외를 왕복하는데, 마트만 다녀오기는 심심했다는 것. 그게 빵뽈을 들른 이유다. 위치는 갱강 위에 있다.
1. 빵뽈(Paimpol)은 뭐하는 곳?
내가 겪어 본 브르타뉴의 해안 소도시들은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걸 먼저 꼽자면,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한국의 서해가 약 9~10m의 조수 간만의 차 극댓값을 갖는데, 이 동네는 12~16m나 차이 난다. 그래서 굴이나 홍합이 유명하단다. 맛있게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이라든가?
이런 걸 보면 서해나 남해와 비슷한 느낌인 것 같은데, 또 물이 가득 차면 동해의 느낌이 난다. 돌이 많고 절벽도 많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동해 서해 남해를 짬뽕시켜 놓은 듯한 바다를 갖고 있다는 것.

그러니 결국 먼저 보게 된 것은 바다다. 이전 여행기 컨텐츠였던 Perros-Guirrec(페로스-기렉), Cancale(캉칼, 껑깔, 껑꺌르), Saint-Malo(생말로) 또한 같은 브르타뉴 바다인데, 빵뽈의 바다는 느낌이 다르다. 여긴 진짜 시골 느낌이다. 관광지의 느낌이 전혀 없다.
위에 올린 로귀비 드 라 메르(Loguivy de la Mer)[링크]라는 항구가 빵뽈에서 나름 유명한 항구다. 작지만 전통적인 어업 방식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의 숫자보다 지나가는 사람의 숫자가 더 적은 그런 곳이다. 대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조용한 매력을 갖춘 곳이란 것. 바닷가 양옆으로 돌담과 돌산이 둘러싸고 있어, 잔잔한 호수 같은 느낌이 든다.


인근 바다의 모습이다. 잔잔하다. 물이 쫙 빠져나가 육지처럼 보이는 땅에 배가 박혀 있다. 썰물에 같이 빠져나가지 못한 해초들이 거뭇거뭇 널브러져 있다.
주차하고 해안가로 가는 동안, 카약을 든 수많은 사람들을 봤다. 이곳 어디서쯤 출발해 브레아 섬(Île de Bréhat)으로 가는 투어 코스가 유명하다고 한다. 초보자를 위한 코스부터 고급자를 위한 코스까지 다 있는데, 여긴 여름철 평균 기온이 20~25℃라 한여름에도 장시간 놀 수 있다고.
2. Abbaye de Beauport(보포르 수도원)
보포르 수도원(Abbaye de Beauport)[링크]은 빵뽈 여행을 계획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곳이다. 다음은 간단하게 정리한 특징 리스트.
- 13세기 설립된 유서 깊은 수도원 – 1202년 프레몽트레 수도회에 의해 건설됨.
- 웅장한 고딕 양식 건축 –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아치와 스테인드글라스 창.
- 바닷가와 맞닿은 특별한 입지 – 수도원에서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 역사적 중요성 –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로 오랫동안 활용됨.
- 문화재로 보호됨 – 프랑스 역사적 기념물(Monument Historique)로 지정됨.
-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 – 폐허 속에서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음.
- 풍부한 생태 환경 – 정원과 주변 자연 보호 구역이 함께 보존됨.
-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과 전시 – 역사적 연구, 예술 전시, 음악회 등이 열림.
- 사진 명소로 유명 – 햇살과 조화된 석조 건물이 인상적인 풍경을 연출.
- 도보 여행 코스의 중심지 – 해안 산책로와 연결되어 트레킹 명소로 인기.
한때 성직자들이 수도 생활을 하던 곳인데, 지금은 폐허의 느낌이 강하다. 관리가 잘 된 폐허랄까. 그래서 입장료가 있다. 우리가 갔을 때 6~7유로 정도 했었는데, 25년 2월 현재, 잠시 문을 닫은 상태인 듯하다.

길을 쭉 따라가면 수도원 건물 입구가 나온다. 매표소이자 입구. 오른쪽으로는 외벽만 남은 독특한 건물이 위태롭게 서 있다. 폐허와 정상의 조화랄까.
티켓을 끊고 내부로 들어서면 이곳의 역사를 설명하는 작은 공간이 나오고, 곧 외부 정원으로 이어진다. 비중은 실내보다 야외가 훨씬 크다. 그래서 내부 사진은 거의 없고, 외부 사진만 잔뜩 있다.


폐허지만 폐허스럽지 않은 곳이다. 적막하고 고요하다. 얼마의 세월을 견뎌내었는지 가늠도 안 가는 오래된 나무들이 힘을 내어 새싹을 피워내고 있다. 그 아래로는 이가 빠진 아치와,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웅장한 아치형 구멍이 자리하고 있다. 평온하면서도 쓸쓸한 분위기가 감돈다. 묘하다.

아치형 구멍으로 내다보니,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독특한 풍경이다. 은근히 방문객이 있는 날이었는데도 꽤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어서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들어오기 전 봤던 외벽만 남은 거대한 건물이다. 크기를 보니 메인 성당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부벽(Flying Buttress)이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밀라노 대성당의 모습과 닮았다. 같은 고딕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나 보다. 왼쪽 벽은 부벽이 받쳐주고 있어서 안 무너지고 있구나 싶은데, 오른쪽의 벽은 부벽이 없다. 두껍긴 하지만, 위태로워 보인다. 천장이 날아가서인지 폐허의 느낌이 제대로 난다.

간간이 실내 공간도 나온다. 또다시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아치 구조와 마주했다. 밝은 낮인데도 살짝 어둡고 습한 느낌이다. 옛 수도원이 지닌 신비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온다.

내부는 한없이 어둡고 음침하고, 외부는 한없이 밝고 화사하다. 명과 암의 대조. 뭔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은 느낌이다.

돌벽으로 둘러싸인 비교적 작은 정원을 벗어나면 긴 오솔길이 나 있는 큰 정원이 나온다. 길 양옆으로는 심은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어린나무들이 줄지어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다. 누군가를 정중하게 초대하는 느낌이다.

좀 더 걸어가면 흰 꽃이 만개한 정원이 나온다. 양들과 소들이 한가로이 푸른 풀을 뜯고 있다. 관광객에 익숙한지 쳐다보지조차 않는 의연한 모습이다.
들어오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부지가 상당히 넓다. 전반적으로 관리도 잘 되어 있다. 그만큼 품이 많이 드니 입장료가 있는 듯하다.
적당한 산들바람과 흐리지 않을 정도로만 해를 막아주는 구름이 있는 좋은 날이었다. 햇빛에 싱그러이 빛나는 풀과 나무와 돌들이 폐허스럽지 않은 폐허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런 게 보포르 수도원의 매력이지 싶다.
3. 수도원 바깥 풍경
수도원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나왔다. 여전히 날은 밝다. 입구의 반대편에서 보니 부지가 꽤 넓어 보인다. 보포르 수도원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다.

수도원을 등지면 바닷가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물이 어느 정도 빠져 바닥이 드러난 푸른 바다가 보인다.

GR34 트레킹 코스에 포함된 해안길이 보인다. 곧 빵뽈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에 한참을 걷다 돌아왔다.
5. 마치며,
빵뽈(Paimpol)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고즈넉한 해안 도시’ 정도로 정리될 것 같다. 휴양지도 아니고, 엄청난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여유로움에 반하게 되는 곳이랄까? 수많은 브르타뉴의 소도시를 방문해 왔는데, 각각의 지역이 주는 느낌이 참 다른 것 같다.
호수 같았던 바다 Loguivy de la Mer (로귀비 드 라 메르), 폐허였지만 동화 같은 감성을 지닌 Abbaye de Beauport (보포르 수도원) 모두 좋았다. 그런 곳 있지 않은가, 특출난 데 하나 없이 별거 아닌 곳인데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곳, 빵뽈은 딱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