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니옹(Lannion), 프랑스 브르타뉴 소도시에서 반년 살기

라니옹(Lannion),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방에 자리한 작은 도시이다. 관광지는 아니다. 그래서 라니옹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한국인은 거의 없지 싶다. 근데 뜬금없이 왜 이곳에 대한 컨텐츠를 쓰느냐고? 이곳에 반년 정도 살아봤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한국인은 딱 두 명 봤다. 그중 한 명은 이곳에서 일했던 나의 여자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라니옹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여자친구에게 연락해 온 한국인이었다. 그만큼 한국인 보기 귀한 이 곳, 내겐 더없이 특별한 곳이기에 글로 남긴다.

브르타뉴(Bretagne)는 들어봤을지 모르겠다.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같은 느낌이다. 프랑스의 북서쪽을 묶어 브르타뉴라고 한다. 라니옹을 넘어 브르타뉴 전체로 보더라도 한국인 관광객은 많지 않다. 강원도 여행하는 외국인이 많지 않은 것처럼. 아무튼, 뭐 그런 곳이다.

나름 운치는 있다. 한국의 시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거두절미하고 소개하도록 하겠다.

1. 라니옹(Lannion), 겨울 시내 풍경

산다는 것은 여행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반년 가까이 있던 곳이지만, 사진과 동영상이 많이 없다. 우리가 집 주변에서 촬영을 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기에, 그때를 기억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곤 한다. 덕분에 많진 않지만, 그곳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된 영상물이 몇 개 남아 있다.

이 작은 마을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 날, 짐벌에 고프로를 올린 채 시내로 나갔다. 걸어 가면 20분쯤 걸렸던 것 같은데, 보통은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 여자친구가 출퇴근용으로 타고 다녔던 토요타의 경차 아이고(Aygo), 이 블로그에 쓸 컨텐츠의 태반을 같이 다녔으니, 우리의 발이자 심장이었다 해도 될 것 같다. 차 관련 글도 하나 써야하지 싶다. (프랑스에서 자동차 구매하기 & 판매하기, 제값 받는 팁!) 이런 제목으로.

Walking through Lannion travel in the city center 라니옹여행 시내 중심부를 걷는 모습
Strolling through Lannion’s Streets 라니옹 시내 골목을 거니는 모습

시내 중심부의 모습이다. 평소에 이 정도로 활기차지는 않은데,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 시즌이라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온 것 같다. 우리 앞으로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 유럽 소도시를 여행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항상 신기하게도 아이들을 찾기 어렵지 않다. 아이 보기 귀한 한국 시골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이 짧은 움짤에서 라니옹, 더 넓게는 브르타뉴의 특징을 하나 찾을 수 있는데, 그건 바로 돌집. 브르타뉴 지방에는 화강암(Granite)이 많다. 그래서 화강암으로 집을 짓는다. 우중충한 회색 화강암도 있고,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핑크빛 화강암도 있다. 이 돌들로 집을 지으면 두껍고 튼튼하다. 습한 해양성 기후를 막아 준다. 이 동네 날씨는 영국 저리가라인 게, 해가 쨍쨍하다가 우박이 쏟아졌다가 다시 태양이 불타올랐다가 폭우가 온다. 그래서 지붕도 대부분 슬레이트(Slate, 천연 석판)으로 덮는다. 물에 강하기 때문이다.

우중충한 날씨와 건물을 뚫고 계속 걸어간다.

Entering the Lannion travel Christmas market at wintertime 라니옹여행 겨울철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들어가는 장면
Approaching the Christmas Market 크리스마스 마켓 입구로 다가가는 모습

그 끝에서 마주한 Place du Centre, 중심 광장. 라니옹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광장 양쪽으로 카페와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중앙부는 평소에 도로와 주차장으로 쓰인다. 이날은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

유럽에서의, 라니옹에서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작은 축제 느낌이다. 단순히 5일장 서는 느낌은 확실히 아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전통, 문화, 공동체의 결속, 축제의 상징이다. 해가 저문 뒤 왔으면 갖가지 조명으로 훨씬 예뻤을 테다.

A wide-angle view of Place du Centre Christmas Market, filled with festive decorations and people enjoying the holiday spirit. 크리스마스 장식과 축제 분위기로 가득한 Place du Centre 크리스마스 마켓의 전경.
A horse standing in Place du Centre Christmas Market, with children riding in a carriage behind. Place du Centre 크리스마스 마켓에 서 있는 말과 마차를 탄 아이들.
A seating area at Place du Centre Christmas Market where people enjoy festive food and drinks. Place du Centre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
A family waving at the camera in Place du Centre Christmas Market, with a small band playing on the left. Place du Centre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카메라를 보고 손을 흔드는 가족, 왼쪽에서는 작은 밴드가 연주 중.

1년 중 가장 큰 행사이니만큼 상당히 붐비는 모습이다. 말도 보이고, 내 고프로를 보고 인사하는 아이도 있고, 간이 테이블도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뱅쇼(Vin Chaud)다. 한국에서도 자주 보여 유명할 텐데, 가끔 아이스 뱅쇼를 팔더라. Chaud가 따뜻하단 뜻인데… 차가운 따뜻한 와인이라니, 이 뭔.

난 뱅쇼보단 Cidre Chaud가 좋다. 시더러 쇼, 혹은 Hot Cider. 따뜻한 사과주라 생각하면 된다. 뱅쇼보다 단맛이 강하고 도수도 낮다. 시더러 쇼는 유럽 보단 영미권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시즌보단 추수감사절에 많이 마신다곤 하는데, 아무튼 더 좋아해서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마켓에 갈 때마다 시더러 쇼만 찾아다닌다.

음식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팔고, 좀 더 큰 도시에선 놀이 기구들도 들여놓는다. Place du Centre에는 자리 여유가 없었는지 레게흐(Le Léguer) 강변에 회전목마와 몇 가지 놀이기구들을 가져다 놓았더라.

사실 여기가 메인 광장인지도 크리스마스 마켓 연 거 보고 알아챘다. 평소에는 도로 겸 주차장이었으니.

2. 레게흐(Le Léguer) 강변 산책에서 만나는 평화

어지간한 도시라면 강 하나 쯤은 품고 있다. 라니옹 또한 그렇다. Le Léguer, 레게흐 강. 워낙 한적한 동네다 보니 도심은 거기서 거기다. 몇 번 왔다갔다 하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파악이 되는 그런 수준? 그래서 가끔 리프래쉬 하고 싶을 때 차를 끌고 강가로 갔다. 트래킹용 흙길도 잘 나 있어서 조용한 강변을 산책하고 있노라면, 가끔 현지 프랑스인들이 어디서 왔냐고 묻곤 한다.

A man waving at the GoPro camera along the banks of the Le Léguer River in Lannion. 라니옹 Le Léguer 강변에서 고프로 카메라를 보고 손을 흔드는 아저씨.
A friendly man waving at the camera by Le Léguer River in Lannion. 라니옹 Le Léguer 강변에서 카메라를 보고 인사하는 아저씨.

고프로를 들고 나간 날, 트래킹하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인사한다. Bonsoir! 특별하게도 라니옹에서는 보기 드문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다.

해가 지고 블루아워가 오기 직전의 시간, 약간의 노을이 남아 있어 지면에 가까운 하늘만이 붉그스레한 빛을 간직한 시간, 이럴 때 강가를 걷고 있노라면, 참 몽환적인 기분이 든다. 내가 꿈속의 나비가 된 것 같은 느낌?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Sunset by the Le Guindy river with a faint reflection of the opposite bank 라니옹 여행 레게흐 강변에서 보이는 희미한 반대편 기슭의 반사와 함께한 석양
Reflections at Dusk 어둑해지는 강변, 석양과 반영의 조화

하늘보다 풀숲에 어둠이 더 빨리 내려앉았다. 무색의 실루엣들. 잔잔하지만, 중간에 기름띠 같은 무언가가 떠 있는 강가가 거울이 됐다. 유속이 거의 없어 강이 아니라 호수같기도 하다. 이 예쁜 경치를 망치는 기름덩어리 오폐수. 어딜 가나 비양심적인 인간은 있게 마련.

한겨울에도 크게 춥지 않은 게 딱 지중해성 기후인 줄 알았는데, 알아보니 온대 해양성 기후라고 한다. 한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없어 눈은 못 본다고 보면 된다. 요새 이상기후로 파리에 폭설이 내리기도 하던데, 여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검색해 보니 홍수가 났단다…

위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물이 별로 없어 수위가 낮았었는데, 저게 범람했을 테니 강가의 아름다운 집들은 폐허가 되었을지도…

3. Lannion의 지붕, Brélévenez 성당

여행지라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여러 명소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église de la Sainte-Trinité de Brélévenez, 보통은 브렐레베네즈(Brélévenez) 성당이라고 부른다. 감성적인 돌계단과 쿵꾸무리한 하늘이 있는 곳. 여름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날씨가 우중충해서 사람들은 우산 대신 방수되는 겉옷을 입고 다닌다. 영국과 비슷한 기후.

 

A staircase leading up to Brélévenez Church in Lannion, with the church spire peeking from the top. 라니옹 브렐레베네즈 성당으로 이어지는 계단, 언덕 위로 교회 첨탑이 살짝 보이는 모습.
Steps leading to Brélévenez Church in Lannion. 라니옹 브렐레베네즈 성당으로 향하는 계단.

끝이 없는 계단을 오르고 나면, 뾰족한 첨탑이 인상적인 성당 전경이 펼쳐진다. 고풍스러운데 성당 사진은 없다. 내부로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굳게 닫힌 문틈 사이로 쓸쩍 눈알을 굴려 보니 운영하지 않는 시간인 듯. 실망감에 성당 사진 하나 찍지 않은 듯하다.

성당 근처 분위기가 오묘한데, 공동묘지가 성당을 둘러싸고 있다. 특유의 유럽씩 묘지다. 한국에선 봉분을 쌓아 올린다면, 이곳에서는 평평한 무덤 위에 대리석이나 석판을 덮는다. 그 주위로는 풀이나 꽃을 심기도 하고, 조각상을 올리기도 하고, 이름, 추모 문구 등이 새겨진 비석이 서 있기도 하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아니다. 상당히 정돈된 느낌. 조용히 거닐며 그들을 추모했다.

A panoramic view of Lannion’s slate rooftops from Brélévenez Church. 브렐레베네즈 성당 앞에서 내려다본 라니옹의 슬레이트 지붕들.
Lannion’s cityscape viewed from Brélévenez Church. 브렐레베네즈 성당에서 바라본 라니옹 시내.

성당이나 묘지 사진은 없지만, 라니옹 시내를 찍은 사진은 있다. 위에서 말했던 슬레이트 지붕들이 보인다. 특징 없이 다 같은 색. 감성은 없고 이성과 효용성만 남은 모양새. 주황색으로 쫙 칠했으면 프랑스의 리스본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래서 도시 계획이 중요한 거다.

4. 라니옹에 살면서 수도 없이 간 곳들

반 년 가까이를 이 작은 도시에 살며 수도 없이 간 곳이 있다. 많게는 일주일 내내도 갔고, 적게는 일주일에 한두 번을 꼭 방문한 곳. 정확히는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

E.Leclerc supermarket in northern Lannion 라니옹 북쪽에 위치한 E.Leclerc 마트
The exterior of Intermarché in Lannion, one of the most frequently visited supermarkets. 라니옹의 Intermarché 마트 외관, 자주 방문했던 마트 중 하나.
The exterior of GRAND FRAIS market in Lannion, known for its Asian products and fresh local produce. 라니옹 GRAND FRAIS 마트 외관, 다양한 아시아 제품과 신선한 지역 농산물로 유명함.
The sign of LiDL supermarket in Lannion, known for budget-friendly options. 라니옹 LiDL 마트 간판,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 유명한 마트.

할 게 없으면 마트 구경이 최고다. 하늘 색갈 보면 알겠지만, 왼쪽 두 마트를 같은 날 방문, 오른쪽 두 마트를 같은 날 방문했다.

프랑스 마트 비교 분석 컨텐츠도 재미있을 것 같아, 나중에 한번 써 보려 한다. 그러니 간략하게만 소개하겠다.

순서대로 르클레르(E.Leclerc) CEDEX, 앙떼르마르셰(Intermarché) SUPER, 그랑프레(Grand Frais), 리들(Lidl)이다.

르클레르와 앙떼르마르셰, 내 발음대로 하면 르끌레어와 앙떼르마셰는 물건 위치까지 줄줄 외울 정도로 자주 갔었다. 르끌레르는 여자친구 회사 앞에, 앙떼르마셰는 집 근처에 있었기 때문. 둘 다 엄청 큰 대형마트다. 땅덩이가 넓어서 그런지 굳이 높이 안 올리고 주차장도 지하로 안 뚫는다. 대부분의 생필품과 음식은 이 두 곳과 아마존에서 구매했다. 

그랑프레(Grand Frais)도 자주 갔었는데, 작은 도시답게 당시에는 아시안 마켓이 없었다. 그나마 이곳에 각종 쌀과 아시아 채소, 과일들, 향신료 등을 팔아서 은근 자주 갔다. 특히 퀄리티 좋은 지역 특산물들이 많아서, 야채와 과일은 어지간하면 조금 비싸도 이 곳에서 사 먹었다.

리들은 그냥 가성비 마켓. 퀄리티는 좋지 않은 편. 라니옹에 살 땐 거의 안 가고, 파리나 다른 곳을 여행할 때 주변에 다른 마트가 없으면 어쩌다 한 번씩 방문한 곳이다.

마트 구경은 언제나 재밌다.

5. 마치며,

라니옹(Lannion)은 유명 도시도 아니고, 관광지는 더더욱 아니다. 대기업 몇 개가 마을 전체를 먹여 살리는, 한국의 울산같지만 규모는 훨씬 작은 시골이다. 시골이라고 해서 한국의 시골을 상상하면 또 안 된다. 아무튼, 고즈넉하지만 활력도 살아 있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도시다.

시내 중심부의 조용한 골목길에서 풍기는 중세 감성,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연말 분위기, 레게흐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소박한 자연 풍경, 모든 게 선명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아몬드크루아상이 특히 맛있던 빵집 La Boulangerie Terroir & Tradition, 숨막히게 비쌌던 McDonald’s, 잔잔한 파도가 치는 실내 수영장 Espace Aqualudique Ti dour,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케밥집 Ozgûr Kebab 등등, 죽기 전에 다시 가 볼 일 없을 것 같은 라니옹,  오늘따라 살짝 그립다…

라니옹에서 거주하던 레지던스
lannion home sweet home

그래서 또 가서 살아보고 싶냐고?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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