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스-기렉(Perros-Guirec). 이곳을 아는 한국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습니다.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페로스-기렉”에 가깝지만, 프랑스어 특유의 ‘r’ 소리를 살려 말하면 “페호스-기헥” 쪽이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네요. 사실 발음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죠?
프랑스에도 서울로 치면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처럼 여러 지방이 있는데, 페로스-기렉은 바로 프랑스 북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작은 해안 도시입니다. 파리나 남부 휴양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프랑스 현지인들이 조용하고 여유로운 휴양 도시를 찾을 때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작은 휴양 도시 페로스-기렉의 매력이 뭘까 궁금할 겁니다. 제가 느끼기엔 우리나라의 동해안과 비슷한 느낌인데요, 돌로 이루어진 수많은 기암절벽들, 절벽 위에 지어진 집들, 해변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물놀이와 액티비티를 즐기고, 여유롭게 해안가를 걸으면서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입니다. 뭔가 따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잔잔한 파도와 여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독특한 색감과 풍경… 이런 매력적인 요소들은 제 발걸음을 몇 번씩이나 이 도시로 향하게 만들었죠.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또한 한 번쯤은 가 보고 싶은, 그런 휴양지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네요. 본격적으로 Perros-Guirec을 소개하겠습니다.
1. Perros-Guirec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해변가
바다, 페로스-기렉을 방문하는 여행자가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공간입니다.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이곳은 수많은 해안과 맞닿아 있기에 자연스레 다양한 해변을 탐방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트레스트라고우(Trestraou), 플라주 드 트레스트레그넬(plage de Trestregnel), 플라주 드 생귀레크(Plage de Saint-Guirec), 그리고 플라주 드 포르 브랑(Plage de Porz Balan) 등이 있는데, 각각의 해변은 같은 프랑스 해안 도시 안에 있으면서도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뽐냅니다.
바람이 좋아 파도가 센 해변에는 계절을 막론하고 수많은 서퍼들이 모입니다. 저도 한때 Perros-Guirec 근처 Lannion(라니옹)이라는 소도시에서 지낸 적이 있지만, 직접 서핑을 해 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겨울철에도 기온이 크게 내려가지 않기에, 하얀 파도를 가르며 보드를 타는 이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액티비티에 집중하는 해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 단위 여행객이 한적한 산책과 휴양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여럿입니다. 특히 핑크 그라니트 해안(Pink Granite Coast)에 속한 트레스트라고우(Trestraou) 해변은 주변에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접근성도 좋고, 주차 환경도 비교적 편리해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곤 합니다.
바람이 잠잠한 날에는 앞바다에서 요트나 카약 같은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좋으며, 형형색색 딩기요트(dinghy)와 카이트서퍼들의 역동적인 모습은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혹은 그랑드 섬(Île de la Grande) 보트 투어에 참여하거나, 해변가 트레킹 코스를 따라 조용히 산책을 즐기는 것도 훌륭한 선택입니다. 곳곳에 자리한 붉은빛 화강암 바위들은 일출과 일몰 시간에 특히 인상적인 풍광을 선사해, 이 두 시간대는 놓치기 아깝습니다.
2. Perros-Guirec의 붉은 기암괴석과 등대가 선사하는 황홀경
페로스-기렉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단연 코트 드 그라니트 로즈(Côte de Granit Rose), 즉 핑크 그라니트 해안입니다. 이 붉은 화강암 지형은 해가 뜨고 질 때 유독 선명하게 빛나며, 청록빛 바닷물과 어우러져 마치 그림엽서 같은 장면을 연출합니다. 게다가 Sentier des Douaniers(GR34)라 불리는 해안 산책로가 훌륭하게 가꿔져 있어, 가벼운 트레킹만으로도 매 순간 바뀌는 파노라마 같은 절경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유명 스팟 중 하나인 Men Ruz 등대(Phare de Men Ruz)는 핑크색 화강암으로 지어져, 주변 지형과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석양 무렵 이곳에 오면, 붉은 기암괴석과 바다가 서서히 하나로 물들어 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죠. 해안절벽 위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큼직한 바위섬과 드넓은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때로는 바닷새 떼가 함께 어우러져 더욱 장엄한 풍광을 선사합니다. 바람이 거센 날이 많으니, 따뜻한 외투를 챙기는 건 필수입니다.
3. 크레페와 성당, 그리고 골목길에서 찾는 Perros-Guirec의 숨은 매력
해변과 자연 풍경만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면, 페로스-기렉 시내로 향해 브르타뉴 특유의 맛과 문화를 체험해 보세요. 많은 사람이 크레페(Crêpe)와 갈레트(Galette) 하면 파리를 떠올리지만, 이곳 역시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 더욱 진하고 깊은 풍미를 자랑합니다. 쌀쌀한 날씨에는 따뜻한 크레페와 달콤한 디저트, 그리고 과일 향이 은은한 시드르(Cidre) 한 잔이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한 église Saint-Jacques 성당은 중세 시대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명소입니다. 외관은 소박해 보여도, 내부는 웅장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섬세한 조각으로 채워져 있어 들어서자마자 감탄을 자아냅니다. 성당 부근 골목에는 작은 빵집과 기념품샵들이 밀집해 있는데, 걷는 내내 유럽 소도시 특유의 정취가 물씬 풍겨 기분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습니다.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소박한 어시장과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을 찾을 수 있는데, 앞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 요리를 맛보며 주변 풍경을 함께 즐기는 순간이야말로 이 지역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죠. 잠시라도 북적이는 도시 생활을 잊고 싶다면, 페로스-기렉에서의 느린 걸음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4. 마치며,
페로스-기렉(Perros-Guirec)은 프랑스 북서쪽 브르타뉴 지방을 대표하는 “숨은 보석” 같은 장소입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붉은빛 화강암 해안이 만들어 내는 신비로운 풍경과 다채로운 해양 액티비티, 그리고 브르타뉴 특유의 음식 문화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죠. 바쁘게 돌아가는 대도시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유럽 소도시 여행을 꿈꾼다면, 이곳만큼 독특하고 인상적인 추억을 선사하는 곳도 드물 겁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엔 다소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막상 도착하면 일상의 번잡함이 잊힐 만큼 상쾌한 바닷바람과 고즈넉한 풍경이 반겨 줍니다. 거친 파도를 즐기는 서퍼부터, 낭만적인 일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여행자, 중세 시대 건축물을 찾아 골목길을 누비는 사람들까지—모두가 한곳에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페로스-기렉을 만끽합니다.
낮에는 한껏 다이내믹한 에너지가 넘치지만, 해가 질 무렵이면 붉은 기암괴석과 함께 어우러진 노을 풍경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여기에 현지 식당에서 맛보는 크레페와 신선한 해산물 요리는 곁들여진 시드르 한 잔과 함께 더욱 특별한 식탁을 완성해 주죠.
언제 찾아도 좋지만, 아무래도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날씨가 온화하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기에도 좋습니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혹은 혼자서라도 이곳에 머무는 순간만큼은 시간마저 느리게 흐르는 듯한 평온함이 느껴집니다. 잠시라도 북적이는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분들께 페로스-기렉은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5. 추가 팁
- 여행 시기: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날씨와 파도가 비교적 안정적이라 해양 스포츠 즐기기에 좋습니다.
- 교통 편의: 렌터카를 이용하면 해변 이동이 편리하고, 대중교통도 마을 내부는 잘 연결돼 있습니다.
- 해안 트레킹: GR34 구간 중 일부만 걸어도 멋진 전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편한 신발과 바람막이를 준비하세요.
- 현지 음식: 크레페·갈레트 외에도 제철 해산물 요리는 꼭 한 번 맛보길 권합니다.